‘공연의 완성은 음향’
소향씨어터 컨스털레이션 시스템에 대해 말하다, 이돈응 교수
아무리 휼륭한 연주자라도 조율되지 않은 악기로는 감동을 줄 수 없듯이, 공연장도 좋은 공간음향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제아무리 훌륭한 연주자, 작품, 기획자가 있다 해도 충분한 감동을 주기 어렵다. 몇몇 공연장을 다니면서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보는 공연마다 무대 기획, 연주자들의 실력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홀의 울림과 소리 전달 상태 또한 비교되곤 한다. 소리가 더 잘 들리고 편안한 곳에서 듣는 연주가 더 좋게 느껴지는 법이다.
공간음향은 청중과 연주자 모두에게 중요하다. 공간음향은 일종의 문화예술지원정책이다. 우리 사회에 음악이 삶과 더 가까워지고 국민들의 예술적 소양과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토양이다. 제대로 된 공간음향이 없다면 황무지에서 화려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의 음악가와 관객들은 이 다소 부족한 토양 속에서도 수준 높은 음악적 성취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의 연주자들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코로나 상황에도 수많은 공연들이 열리고 관객들도 꾸준히 무대를 찾고 있다. 음악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한층 높아진 연주, 관객 수준에 맞춰 공간음향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이돈응 교수는 일찍이 전자음악을 공부하면서 라이브 환경 및 음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수많은 다목적홀들의 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잔향가변시스템―컨스털레이션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강오디오의 강찬우 음향설계 총괄과장이 이돈응 교수와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교수님은 굉장히 독특하고 다양한 경력을 가지신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부터 전자음악, 서양음악부터 국악, 요즘은 최신 기술과 음악을 결합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그런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작곡가로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도 한번 이야기해 주세요.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학교 밴드에서 시작해서 과학, 수학도 좋아했습니다. 저에겐 음악이 쉽게 다가왔는데 수학적으로 풀 수 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어요. 밴드 마스터가 돼서 지휘를 하게 되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은사님이 지휘를 하려면 작곡을 해봐야 한다고 하셔서 고2 때부터 작곡을 배워 서울대학교 작곡과 입학을 했는데, 당시는 지휘과가 없었어요. 외부 유명 지휘자가 오면 쫓아다니면서 배우곤 했죠. 졸업 후 선화예고, 서울예고에서 학생들 가르치다가 독일 문화원장 요하임 빌러의 추천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후버 선생님에게 작곡을 배우고 트레비스 선생님에게 지휘를 배웠는데, 이후 작곡에만 전념하게 되었어요.
독일 유학 당시 학교에 전자음악 스튜디오가 생겨서 마이구아시카 교수님께 전자음악을 배우게 되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 과학을 좋아해서, 보통 음악과 학생들은 음악만 하는데 저는 수학, 물리학을 잘해 다른 학생보다 빨리 배울 수 있었습니다. 씽클라이버라는 최신 신디사이저가 있었는데 그것을 독일 남부 쪽에서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이후 독일 남서방송국 하인리히 스트로벨 재단에 현대음악 작곡가 루이지 노노가 책임자로 있었던 전자음악연구소 ‘엑스페리멘탈스튜디오’가 있었는데 그 스튜디오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를 하게 됐습니다. 유럽 투어를 하며 공연을 했는데, 굉장히 많은 공연장에서 실험 음악을 했기 때문에 공연장뿐 아니라, 창고, 성당, 성 같은 다양한 곳에서 실전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전자음악을 하려면 음향도 알아야 합니다. 이론적인 음향학 외에 실제로 여러 장소에서 공연을 하면서 다양한 음향적인 경험이 되었죠. 그곳에서 음향 엔지니어로 경험을 쌓다가 작곡에 전념하고 싶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귀국 후 한양대에서 작곡과 교수로 일하면서 전자음악을 했습니다. 저는 테크니션에 가깝게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해결했는데 작곡도 하고 엔지니어의 역할도 한 것이죠.
그러다 2000년도 정도에 무대예술전문인 검정위원회가 생겼어요. 저도 그곳에서 오진수 교수님과 함께 무대음향 검증위원회 위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오진수, 김호균, 박영철 교수님 등 여러 전문가들을 다 알게 되었죠. 책 쓸 사람이 없다고 해서 제가 책을 쓰기도 했는데, 그 당시는 아직 아날로그 시대였기 때문에 아날로그 기술 위주로 썼어요. 그런데 요즘은 디지털 시대라 새로운 책이 필요합니다. 20년이 지났고 새로운 기술이 많이 나왔는데 아직까지 제 책을 쓰고 있는 것이 좀 안타깝습니다. 더 잘하는 사람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새 책을 써주길 바랍니다.
이후 서울대로 옮겨와 컴퓨터 음악 중에서도 센서를 사용하는 음악, 알고리즘에 의한 음악을 했습니다. 사운드 인스톨도 했는데 단순한 설치가 아니라 다양한 악기, 기구를 만들어 설치, 공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창호지 문 스피커도 개발해서 만들고…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했습니다. 음악연주로봇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드럼, 실로폰, 마림바, 오르간을 연주하는 로봇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르간은 벨로우즈를 이용해 폐의 호흡을 시뮬레이션해 연주합니다.
악기 제작을 하려면 음향학을 조금 알아야 해요. 학교에서 성굉모 교수님이라고 유명한 공대 교수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소리의 과학과 악기제작체험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시고 얼마 안 돼서 바로 저에게 과목을 맡겨 주셔서 그 과목을 오랫동안 강의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세계 민속악기들도 소개해 주고 악기 제작을 체험하게 했었죠.
다음은 지휘와 관련되어 습득한 음향관련 경험입니다. 제가 대학교 시절 뉴욕필, 런덜필이 한국에 왔었는데요. 리허설 때 해외 담당자들이 공연장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듣고 오케스트라와 소통하면서 최적의 소리를 내는 배치를 찾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배치에 따라 소리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외 다양한 곳에서 음향적인 경험을 했는데, 해외에 있을 때 독일 스튜디오에서 배운 것들도 있지만, 공연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경험을 쌓았어요. 울림이 많은 옛날 성 같은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는 소리가 전혀 울리지 않는 창고 같은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요.
워낙 다양한 장르와 기술을 다루시다 보니 음향에도 관심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공연을 하면서 음향에 관련된 경험이 많으셨을텐데요.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공연을 위해 임헌정 지휘자님이 부천필하모니를 이끌고 연주하기로 했는데, 지휘자님이 저한테 연락을 하셔서 소리를 봐달라고 하셨어요. LG아트센터가 잘 지은 공연장인데, 음향판을 이동시킬 수 있고 시각적으로도 조명과 함께 보면 매우 환상적이죠. 그런데 음향적으로는 무대의 오목한 구조에서 포커싱이 일어나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포커싱 지점에 위치한 연주자는 작게 연주해도 크게 들리고, 그 초점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연주하면 아무리 크게 연주해도 소리가 작아요. 지휘자가 아무리 연주자들에게 소리 강약과 밸런스를 이야기해도 이런 구조 때문에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죠.
제가 가서 음향 점검을 했는데, 무대 위와 천정의 반사판 각도와 여러 곳의 커튼 월을 조절해 초기 반사와 잔향이 고급스러운 음장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어요. 연주회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물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들을 조절해 음향을 수정했죠. 그런데 건축가가 와서 화를 내면서 다시 원상 복귀를 시켜버린 거예요. 남자 피아니스트 한 사람을 데리고 오더니 그 음악가가 최고라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하는거죠. 사실 피아니스트 연주자 한 명이라 무대의 포커싱 지점에 위치하면 좋게 들릴 수 있지만, 많은 수의 연주자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는 전혀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부분을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그런 상태에서 첫날 개관 공연을 했는데, 결과가 좋을 리가 없죠. 오케스트라 지휘자, 연주자가 다 힘들어 하는데 좋은 공연이 안 됐습니다. 그러더니 건축가가 다시 저를 불러서 죄송하다고 하며 전에 맞춰 주신대로 다시 세팅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반사판 등을 수정하고 난 다음 날 공연은 괜찮았어요. 공연을 하기 위한 공간에서는 음향 전문가와 지휘자, 연주자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한번 실패를 하고 나서야 받아들이더라고요.
작년에 부산 소향씨어터에서 전기적으로 음향을 가변하는 액티브 음향 가변장치인 컨스털레이션 시스템을 경험해 보셨는데요. 이 경험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 주세요. 스피커와 마이크를 사용해 잔향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인데 인위적인 느낌이 들거나 하지는 않으셨나요?
소향씨어터에서 제대로 된 액티브 음향 가변 시스템을 처음 접해봤어요. 전에 베를린 공대 스튜디오, 홀에서도 비슷한 장치가 있긴 했는데, 그곳에서 들어봤던 것과는 달리, 세팅이 굉장히 잘 되어 있고 정말 놀라웠습니다. 무대 위에 올라가 들어봐도 인위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없었거든요. 객석을 전체적으로 돌아다니며 벽에 붙어서 스피커가 어디 숨겨져 있는지 들어보려고 했는데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훌륭했죠.
제가 웬만해서는 그렇게 칭찬을 안 하는데 칭찬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인위적인 걸 전혀 느낄 수가 없었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클래식 공연장으로 사용해도 완벽한 장소라고 느껴졌습니다. 측벽이나 천장에는 반사판이 없고, 양 측벽에는 패브릭 흡음 재질이 있는 상태였는데 너무나 훌륭한 음향감과 잔향이 느껴졌지요.
다만 음악가 입장에서 보면 연주자들의 심리적인 부분을 헤아려 줘야 할 것 같아요. 컨스털레이션 시스템을 사용하면 무대 위 마이크와 스피커가 반사판을 대신하는데, 연주자들에게는 물리적인 반사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안해 할 수 있어요. 연주자 입장에서는 반사판이 없으면 내 소리가 안 들릴텐데 하면서 불안해 할 수 있거든요.
사람들은 원음, 원음을 찾잖아요. 근데 그게 잘못되었어요. 세상에 원음이 어디 있어요. 다 반사된 소리를 듣는 거고 요즘은 특히 녹음된 소리를 많이 듣지요. 잘 들리지 않는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조장치도 필요하고요. 고대 그리스 시대 야외 극장에서도 공명 항아리와 같이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메이어 사운드 기술감독인 존 펠로우도 이돈응 교수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분이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은 원음을 찾는다. 그런데 내가 알기론 진정한 자연음은 동굴에서 나는 소리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만들어진 소리이다”
그럼 전자음악을 하다 보면 잔향을 만들어서 추가해주는 리버브라는 이펙터를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컨스털레이션 음향가변 기술은 이런 리버브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리버브 시스템은 그냥 2채널 스테레오 또는 다채널 오디오 시스템에 사용하는 잔향효과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씨디를 만들 때 스피커 두 대를 위해 나오는 소리를 조절하는 겁니다. 공연에 쓸 때는 살짝 소리에 잔향감을 주기 위해 사용하죠. 그리고 이펙터(효과)로 많이 사용을 해요. 예를 들어 만화에서 보면 동굴 속에서는 소리를 울리게 만들었다가 밖으로 나오면 울림이 없어지지요.
리버브는 미디어를 제작하거나 스피커를 여러대 놓고 하는 공연에 사용하는 것이지, 컨스털레이션처럼 공연장의 건축음향적인 부분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리버브는 스피커 근처에서 들었을 때와 스피커에서 떨어져서 들었을 때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요. 그리고 리버브는 여러 명이 연주하는 경우에는 마이킹을 섬세히 잘 하지 않으면 사용을 할 수가 없어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요. 할 때마다 엔지니어가 다 세팅을 해줘야 합니다. 전문가가 항상 일일이 다 세팅을 세밀하게 다 해줘야 되는 거죠.
조금 다른 문제인데, 예전 서울대에서 행사할 때 반사판이 떨어져 큰 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이후부터는 반사판을 건드리질 않아요.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조정해야 하면 무조건 업체 기술자를 불러요. 사실상 조정을 하지를 않고 있지요.
오페라도 가끔은 마이크를 쓰지만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게 하려면 음향 기술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클래식 공연의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는 마이킹이 상당히 어려워요. 그래서 리버브를 사용하려고 하면 부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리버브를 잘 못 쓰면 오히려 더 이상해지는 거죠.
그런데 컨스털레이션 같은 경우는 그런 세팅을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하나의 다른 음향환경을 가진 공연장을 만들어 주는 그런 개념이에요. 실내악 공연을 하면 거기에 적당한 홀로 만들어 주고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면 거기에 적당한 홀로 만들어 주죠. 공간 자체를 바꿔 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관객들이 시스템을 쓰고 있는지 인식을 못한다는 거예요. 기존 리버브와 스피커를 쓰면 관객도 금방 알아챕니다. 근데 컨스털레이션은 여러 대의 마이크와 스피커를 가지고 공연장 건축물에서 만들어지는 반사음을 그대로 재현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사실 저같이 그래도 전문적으로 음악, 음향을 하는 사람도 스피커가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할 정도니까… 일반 사람들은 스피커가 있는지 전혀 인식을 못할 거예요.
이러한 최신 기술이 우리나라 음악계의 발전과 연주환경의 개선을 위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컨스털레이션은 너무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는 시스템이라 설치가 되면 연주자들에게도 굉장히 유익합니다. 단지 물리적인 반사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연주자들과 관객들의 심리를 어떻게 잘 보듬어 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오케스트라 연습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공연장과 연습실의 환경이 다를 수 밖에 없죠. 일단 공간의 체적 자체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그래서 물리적으로 음향 환경을 비슷하게라도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는 불가능했지만 그런 곳에도 컨스털레이션이 설치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컨스털레이션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리를 더 잘 들리게 만들어주는 보이스 리프트라는 기능이 있다고 들었어요. 고대 그리스 극장을 보면 건축음향만을 사용해 객석으로 소리를 전달하는데, 그렇게 마이크 확성을 하지 않고 컨스털레이션만을 사용해 자연스럽게 보이스를 들리게 하는 기능을 활용하면 강의할 때는 물론이고 오페라 같은 곳에 사용하기에도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시스템이 저렴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건축 공간을 한 번에 바꿔주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것만도 아니에요. 컨스털레이션을 잘 설치해 놓으면 누가 와서 사용해도 본인이 원하는 공연 형태에 맞춰 최적의 음향을 갖춘 공연장으로 사용할 수가 있어 비용대비 활용도가 아주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 강찬우
이돈응 프로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
전 한국작곡가협회, 한국전자음악협회 회장
전 무대예술전문인 자격검정위원회 무대음향 검정위원
전 독일 남서방송국 엑스페리멘탈 스튜디오 컴퓨터음악 엔지니어
전문 보기 https://blog.naver.com/ingangaudio/222529750072
‘공연의 완성은 음향’
소향씨어터 컨스털레이션 시스템에 대해 말하다, 이돈응 교수
아무리 휼륭한 연주자라도 조율되지 않은 악기로는 감동을 줄 수 없듯이, 공연장도 좋은 공간음향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제아무리 훌륭한 연주자, 작품, 기획자가 있다 해도 충분한 감동을 주기 어렵다. 몇몇 공연장을 다니면서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보는 공연마다 무대 기획, 연주자들의 실력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홀의 울림과 소리 전달 상태 또한 비교되곤 한다. 소리가 더 잘 들리고 편안한 곳에서 듣는 연주가 더 좋게 느껴지는 법이다.
공간음향은 청중과 연주자 모두에게 중요하다. 공간음향은 일종의 문화예술지원정책이다. 우리 사회에 음악이 삶과 더 가까워지고 국민들의 예술적 소양과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토양이다. 제대로 된 공간음향이 없다면 황무지에서 화려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의 음악가와 관객들은 이 다소 부족한 토양 속에서도 수준 높은 음악적 성취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의 연주자들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코로나 상황에도 수많은 공연들이 열리고 관객들도 꾸준히 무대를 찾고 있다. 음악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한층 높아진 연주, 관객 수준에 맞춰 공간음향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이돈응 교수는 일찍이 전자음악을 공부하면서 라이브 환경 및 음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수많은 다목적홀들의 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잔향가변시스템―컨스털레이션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강오디오의 강찬우 음향설계 총괄과장이 이돈응 교수와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교수님은 굉장히 독특하고 다양한 경력을 가지신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부터 전자음악, 서양음악부터 국악, 요즘은 최신 기술과 음악을 결합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그런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작곡가로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도 한번 이야기해 주세요.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학교 밴드에서 시작해서 과학, 수학도 좋아했습니다. 저에겐 음악이 쉽게 다가왔는데 수학적으로 풀 수 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어요. 밴드 마스터가 돼서 지휘를 하게 되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은사님이 지휘를 하려면 작곡을 해봐야 한다고 하셔서 고2 때부터 작곡을 배워 서울대학교 작곡과 입학을 했는데, 당시는 지휘과가 없었어요. 외부 유명 지휘자가 오면 쫓아다니면서 배우곤 했죠. 졸업 후 선화예고, 서울예고에서 학생들 가르치다가 독일 문화원장 요하임 빌러의 추천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후버 선생님에게 작곡을 배우고 트레비스 선생님에게 지휘를 배웠는데, 이후 작곡에만 전념하게 되었어요.
독일 유학 당시 학교에 전자음악 스튜디오가 생겨서 마이구아시카 교수님께 전자음악을 배우게 되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 과학을 좋아해서, 보통 음악과 학생들은 음악만 하는데 저는 수학, 물리학을 잘해 다른 학생보다 빨리 배울 수 있었습니다. 씽클라이버라는 최신 신디사이저가 있었는데 그것을 독일 남부 쪽에서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이후 독일 남서방송국 하인리히 스트로벨 재단에 현대음악 작곡가 루이지 노노가 책임자로 있었던 전자음악연구소 ‘엑스페리멘탈스튜디오’가 있었는데 그 스튜디오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를 하게 됐습니다. 유럽 투어를 하며 공연을 했는데, 굉장히 많은 공연장에서 실험 음악을 했기 때문에 공연장뿐 아니라, 창고, 성당, 성 같은 다양한 곳에서 실전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전자음악을 하려면 음향도 알아야 합니다. 이론적인 음향학 외에 실제로 여러 장소에서 공연을 하면서 다양한 음향적인 경험이 되었죠. 그곳에서 음향 엔지니어로 경험을 쌓다가 작곡에 전념하고 싶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귀국 후 한양대에서 작곡과 교수로 일하면서 전자음악을 했습니다. 저는 테크니션에 가깝게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해결했는데 작곡도 하고 엔지니어의 역할도 한 것이죠.
그러다 2000년도 정도에 무대예술전문인 검정위원회가 생겼어요. 저도 그곳에서 오진수 교수님과 함께 무대음향 검증위원회 위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오진수, 김호균, 박영철 교수님 등 여러 전문가들을 다 알게 되었죠. 책 쓸 사람이 없다고 해서 제가 책을 쓰기도 했는데, 그 당시는 아직 아날로그 시대였기 때문에 아날로그 기술 위주로 썼어요. 그런데 요즘은 디지털 시대라 새로운 책이 필요합니다. 20년이 지났고 새로운 기술이 많이 나왔는데 아직까지 제 책을 쓰고 있는 것이 좀 안타깝습니다. 더 잘하는 사람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새 책을 써주길 바랍니다.
이후 서울대로 옮겨와 컴퓨터 음악 중에서도 센서를 사용하는 음악, 알고리즘에 의한 음악을 했습니다. 사운드 인스톨도 했는데 단순한 설치가 아니라 다양한 악기, 기구를 만들어 설치, 공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창호지 문 스피커도 개발해서 만들고…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했습니다. 음악연주로봇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드럼, 실로폰, 마림바, 오르간을 연주하는 로봇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르간은 벨로우즈를 이용해 폐의 호흡을 시뮬레이션해 연주합니다.
악기 제작을 하려면 음향학을 조금 알아야 해요. 학교에서 성굉모 교수님이라고 유명한 공대 교수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소리의 과학과 악기제작체험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시고 얼마 안 돼서 바로 저에게 과목을 맡겨 주셔서 그 과목을 오랫동안 강의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세계 민속악기들도 소개해 주고 악기 제작을 체험하게 했었죠.
다음은 지휘와 관련되어 습득한 음향관련 경험입니다. 제가 대학교 시절 뉴욕필, 런덜필이 한국에 왔었는데요. 리허설 때 해외 담당자들이 공연장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듣고 오케스트라와 소통하면서 최적의 소리를 내는 배치를 찾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배치에 따라 소리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외 다양한 곳에서 음향적인 경험을 했는데, 해외에 있을 때 독일 스튜디오에서 배운 것들도 있지만, 공연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경험을 쌓았어요. 울림이 많은 옛날 성 같은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는 소리가 전혀 울리지 않는 창고 같은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요.
워낙 다양한 장르와 기술을 다루시다 보니 음향에도 관심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공연을 하면서 음향에 관련된 경험이 많으셨을텐데요.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공연을 위해 임헌정 지휘자님이 부천필하모니를 이끌고 연주하기로 했는데, 지휘자님이 저한테 연락을 하셔서 소리를 봐달라고 하셨어요. LG아트센터가 잘 지은 공연장인데, 음향판을 이동시킬 수 있고 시각적으로도 조명과 함께 보면 매우 환상적이죠. 그런데 음향적으로는 무대의 오목한 구조에서 포커싱이 일어나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포커싱 지점에 위치한 연주자는 작게 연주해도 크게 들리고, 그 초점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연주하면 아무리 크게 연주해도 소리가 작아요. 지휘자가 아무리 연주자들에게 소리 강약과 밸런스를 이야기해도 이런 구조 때문에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죠.
제가 가서 음향 점검을 했는데, 무대 위와 천정의 반사판 각도와 여러 곳의 커튼 월을 조절해 초기 반사와 잔향이 고급스러운 음장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어요. 연주회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물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들을 조절해 음향을 수정했죠. 그런데 건축가가 와서 화를 내면서 다시 원상 복귀를 시켜버린 거예요. 남자 피아니스트 한 사람을 데리고 오더니 그 음악가가 최고라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하는거죠. 사실 피아니스트 연주자 한 명이라 무대의 포커싱 지점에 위치하면 좋게 들릴 수 있지만, 많은 수의 연주자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는 전혀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부분을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그런 상태에서 첫날 개관 공연을 했는데, 결과가 좋을 리가 없죠. 오케스트라 지휘자, 연주자가 다 힘들어 하는데 좋은 공연이 안 됐습니다. 그러더니 건축가가 다시 저를 불러서 죄송하다고 하며 전에 맞춰 주신대로 다시 세팅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반사판 등을 수정하고 난 다음 날 공연은 괜찮았어요. 공연을 하기 위한 공간에서는 음향 전문가와 지휘자, 연주자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한번 실패를 하고 나서야 받아들이더라고요.
작년에 부산 소향씨어터에서 전기적으로 음향을 가변하는 액티브 음향 가변장치인 컨스털레이션 시스템을 경험해 보셨는데요. 이 경험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 주세요. 스피커와 마이크를 사용해 잔향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인데 인위적인 느낌이 들거나 하지는 않으셨나요?
소향씨어터에서 제대로 된 액티브 음향 가변 시스템을 처음 접해봤어요. 전에 베를린 공대 스튜디오, 홀에서도 비슷한 장치가 있긴 했는데, 그곳에서 들어봤던 것과는 달리, 세팅이 굉장히 잘 되어 있고 정말 놀라웠습니다. 무대 위에 올라가 들어봐도 인위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없었거든요. 객석을 전체적으로 돌아다니며 벽에 붙어서 스피커가 어디 숨겨져 있는지 들어보려고 했는데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훌륭했죠.
제가 웬만해서는 그렇게 칭찬을 안 하는데 칭찬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인위적인 걸 전혀 느낄 수가 없었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클래식 공연장으로 사용해도 완벽한 장소라고 느껴졌습니다. 측벽이나 천장에는 반사판이 없고, 양 측벽에는 패브릭 흡음 재질이 있는 상태였는데 너무나 훌륭한 음향감과 잔향이 느껴졌지요.
다만 음악가 입장에서 보면 연주자들의 심리적인 부분을 헤아려 줘야 할 것 같아요. 컨스털레이션 시스템을 사용하면 무대 위 마이크와 스피커가 반사판을 대신하는데, 연주자들에게는 물리적인 반사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안해 할 수 있어요. 연주자 입장에서는 반사판이 없으면 내 소리가 안 들릴텐데 하면서 불안해 할 수 있거든요.
사람들은 원음, 원음을 찾잖아요. 근데 그게 잘못되었어요. 세상에 원음이 어디 있어요. 다 반사된 소리를 듣는 거고 요즘은 특히 녹음된 소리를 많이 듣지요. 잘 들리지 않는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조장치도 필요하고요. 고대 그리스 시대 야외 극장에서도 공명 항아리와 같이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메이어 사운드 기술감독인 존 펠로우도 이돈응 교수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분이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은 원음을 찾는다. 그런데 내가 알기론 진정한 자연음은 동굴에서 나는 소리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만들어진 소리이다”
그럼 전자음악을 하다 보면 잔향을 만들어서 추가해주는 리버브라는 이펙터를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컨스털레이션 음향가변 기술은 이런 리버브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리버브 시스템은 그냥 2채널 스테레오 또는 다채널 오디오 시스템에 사용하는 잔향효과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씨디를 만들 때 스피커 두 대를 위해 나오는 소리를 조절하는 겁니다. 공연에 쓸 때는 살짝 소리에 잔향감을 주기 위해 사용하죠. 그리고 이펙터(효과)로 많이 사용을 해요. 예를 들어 만화에서 보면 동굴 속에서는 소리를 울리게 만들었다가 밖으로 나오면 울림이 없어지지요.
리버브는 미디어를 제작하거나 스피커를 여러대 놓고 하는 공연에 사용하는 것이지, 컨스털레이션처럼 공연장의 건축음향적인 부분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리버브는 스피커 근처에서 들었을 때와 스피커에서 떨어져서 들었을 때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요. 그리고 리버브는 여러 명이 연주하는 경우에는 마이킹을 섬세히 잘 하지 않으면 사용을 할 수가 없어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요. 할 때마다 엔지니어가 다 세팅을 해줘야 합니다. 전문가가 항상 일일이 다 세팅을 세밀하게 다 해줘야 되는 거죠.
조금 다른 문제인데, 예전 서울대에서 행사할 때 반사판이 떨어져 큰 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이후부터는 반사판을 건드리질 않아요.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조정해야 하면 무조건 업체 기술자를 불러요. 사실상 조정을 하지를 않고 있지요.
오페라도 가끔은 마이크를 쓰지만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게 하려면 음향 기술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클래식 공연의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는 마이킹이 상당히 어려워요. 그래서 리버브를 사용하려고 하면 부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리버브를 잘 못 쓰면 오히려 더 이상해지는 거죠.
그런데 컨스털레이션 같은 경우는 그런 세팅을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하나의 다른 음향환경을 가진 공연장을 만들어 주는 그런 개념이에요. 실내악 공연을 하면 거기에 적당한 홀로 만들어 주고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면 거기에 적당한 홀로 만들어 주죠. 공간 자체를 바꿔 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관객들이 시스템을 쓰고 있는지 인식을 못한다는 거예요. 기존 리버브와 스피커를 쓰면 관객도 금방 알아챕니다. 근데 컨스털레이션은 여러 대의 마이크와 스피커를 가지고 공연장 건축물에서 만들어지는 반사음을 그대로 재현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사실 저같이 그래도 전문적으로 음악, 음향을 하는 사람도 스피커가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할 정도니까… 일반 사람들은 스피커가 있는지 전혀 인식을 못할 거예요.
이러한 최신 기술이 우리나라 음악계의 발전과 연주환경의 개선을 위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컨스털레이션은 너무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는 시스템이라 설치가 되면 연주자들에게도 굉장히 유익합니다. 단지 물리적인 반사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연주자들과 관객들의 심리를 어떻게 잘 보듬어 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오케스트라 연습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공연장과 연습실의 환경이 다를 수 밖에 없죠. 일단 공간의 체적 자체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그래서 물리적으로 음향 환경을 비슷하게라도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는 불가능했지만 그런 곳에도 컨스털레이션이 설치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컨스털레이션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리를 더 잘 들리게 만들어주는 보이스 리프트라는 기능이 있다고 들었어요. 고대 그리스 극장을 보면 건축음향만을 사용해 객석으로 소리를 전달하는데, 그렇게 마이크 확성을 하지 않고 컨스털레이션만을 사용해 자연스럽게 보이스를 들리게 하는 기능을 활용하면 강의할 때는 물론이고 오페라 같은 곳에 사용하기에도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시스템이 저렴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건축 공간을 한 번에 바꿔주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것만도 아니에요. 컨스털레이션을 잘 설치해 놓으면 누가 와서 사용해도 본인이 원하는 공연 형태에 맞춰 최적의 음향을 갖춘 공연장으로 사용할 수가 있어 비용대비 활용도가 아주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 강찬우
이돈응 프로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
전 한국작곡가협회, 한국전자음악협회 회장
전 무대예술전문인 자격검정위원회 무대음향 검정위원
전 독일 남서방송국 엑스페리멘탈 스튜디오 컴퓨터음악 엔지니어
전문 보기 https://blog.naver.com/ingangaudio/222529750072